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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종말과 심판 2024. 7. 9. 16:27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단지 기독교 종교를 갖느냐 안 갖느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 목적이 수양이나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빙하에 부딛혀 침몰해가는 타이타닉호에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재빨리 구명정에 올라타는 것 뿐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 노아의 식구들이 방주에 미리 대피하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롯의 가족들이 소알성에 미리 대피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죄악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심판받기 전에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기독교가 배타적이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이기 때문이며
이점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 연합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그는 인류에게 종교생활을 하라고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피흘려 목숨까지 버리신 자신을 믿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구원받으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밤마다 파티가 열리는 호화스러운 타이타닉호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빙하에 부딛히면서 멸망은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낯선 불청객처럼 죽음이 찾아왔을 때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감각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출생 이전의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방탕하고 악하게 사는 사람들의 태도는 그러한 유물론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재가 시작된 시점으로부터 인간은 무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영혼을 가진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성경은 타락한 이 세상에 종말이 찾아올 것을 예언하고 있지만,
세상의 종말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육체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종말이 찾아옵니다.
세상에서는 유전무죄가 가능하고 수많은 미제사건들이 법의 심판을 회피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인류 개개인에게 주어졌던 자유의지와 선택의 책임은 사후의 심판을 통해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죄로부터 돌이키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한1서 5:5)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로마서 6:7)
하나님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을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주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주는 것이기에 선한 영향력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죄로부터 벗어난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 유혹은 끊임없이 우리 주변을 맴돌겠지만
우리에겐 유혹과 타협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과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는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설사 넘어지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즉시 일어나야 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로마서 6:14)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6:1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셨기에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용서해주시지만,
우리가 입술로만 회개하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죄를 다룸에 있어서 타인에게는 너그러워도 자신에게는 냉정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주님은 우리가 입술로만 회개하는지 진심으로 회개하는지 다 알고계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를 버리고 악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겸손(Humility)과 하나님을 경외함(The fear of the Lord)으로부터 나오며 삶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겐 생명을 전하고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언 16:6)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언 22:4)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의 종말이 이르기 전에
어쩌면 세상의 종말이 먼저 찾아올지도 모르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을
영원한 삶의 모습을 결정지을 기회로 인식하고 매 순간 신중하고 진실해야 하겠습니다.
회개한 자에게는 회개한대로 거역한 자에게는 거역한대로
인류의 모든 행위에 대한 보상과 보응을 가지고 돌아오실 심판자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하며 믿음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라나타!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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